처음 이름은 한규(漢圭), 자(字)는 자칠(子七), 호(號)는 효우당(孝友堂)이며 부(父)는 세영(世英), 조(祖)는 익한(翊漢), 증조(曾祖)는 봉린(鳳麟)이다. 본성(本性)이 효우(孝友)하여 부모(父母)에게 정성(定省)을 다하고 양친(兩親) 상사(喪事) 때에 3년 동안 여묘(廬墓)하며 밤낮으로 호곡(號哭)하며 슬피 우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지극한 효자(孝子)라고 칭송(稱頌)하였다. 여묘(廬墓)하던 자리에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져 풀이 자라지 못할 만큼 효성(孝誠)을 다하니 이에 감동한 산 속의 큰 짐승들이 공(公)의 신변(身邊)을 지키기 위해 주위를 호위(護衛)하여 주는 감응(感應)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는 참으로 인륜(人倫)의 명분(名分)을 알게 해주고 도덕(道德)을 진작(振作)하여 향민(鄕民)에게 올바른 삶의 길을 제시(提示)하고 유교(儒敎) 윤리(倫理)를 실천했던 고결(高潔)한 큰 선비라고 아니할 수 없다. 만년(晩年)에는 동하(洞荷) 마을 앞에 조그마한 정자(亭子)를 짓고 학문(學問)에 전념하며 자질(子姪)과 향중(鄕中)의 수재(秀才)를 모아 교육(敎育)에 전심(專心)하였는데 그 정자(亭子) 이름이 만귀정(晩歸亭)이다. 정자 이름을 만귀(晩歸)라 한 것은 늙은 만년(晩年)에 이곳에서 한가로이 풍류(風流)를 즐기자는 뜻으로 붙인 것이다.
세대 | 諱(휘) | 관직 | |
10세 | 汝智 | 여지 | 현십세조고 학생 부군 신위현10세조비 완산 이씨 신위 |
11세 | 彦琦 | 언기 | 현십일세조 통훈대부 부군 신위현십일세조비 광산김씨 신위 |
12세 | 鳳燐 | 봉인 | 현십이세조 통조대부 주군 신위현십이세조비 숙부인 김해김씨 신위 |
13세 | 翊漢 | 익한 | 현십삼세조 오위도총부도총관 부군 신위현십삼세조비 정부인 광산 김씨 신위 |
14세 | 世英 | 세영 | 현14세조 가선대부 부군 신위현14세조비 정부인 제주 양씨 신위 |
15세 | 昌羽 | 창우 | 현십오세조고 가선대부 부군 신위현십오세조비 정부인 남평 문씨 신위 |
16세 | 贊國 | 찬국 | 현십육세조고 통훈대부 군자감정 부군 신위현십육세조비 숙부인 전주 이씨 신위현십육세조비 숙부인 김해 김씨 신위 |
17세 | 木宇鉉 | 우현 | 현십칠세조고 통정대부 부군 신위현십칠세조비 숙부인 현풍 곽씨 신위현십칠세조비 숙부인 탐진 최씨 신위현십칠세조비 숙부인 절강 편씨 신위 |
字는 성서(聖瑞), 號는 민재(敏齋). 1784년 甲辰(정조 8년) 9월 4일 출생. 1847년 丁未(헌종 13년) 10월 24일 별세. 享年 62세. 수직(壽織)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됨. 墓는 화개산(華蓋山) 선영(先塋) 자좌(子坐)이다. 配는 光山金氏이며 父는 덕원(德源)으로 문정공(文正公) 태현(台鉉)의 후손이다. 은 7월 27일이다. 墓는 선산 내 우록(右麓) 묘좌(卯坐)이다. <行狀> 公은 어려서부터 性行이 純厚하고 文詞가 卓越하였으며, 커서는 華西 李恒老 先生 門下에서 禮經과 性理學을 깊이 硏究하여 士友의 推重을 받았다. 公의 나이 20세에 某 勢道家門에서 여러 사람을 대동하고 우리 先山에 犯葬하려고 喪輿가 들이 닥쳤을 때 公께서 홀로 先山을 守護하였다.
世 | 휘 관직 | 배위 |
18 | 봉익 / 수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 광산김씨 |
19 | 덕규 / 수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공조참의 | 숙부인 하남정씨 |
19 | 덕기 | 진주강씨 |
19 | 덕삼 | 충주박씨 |
19 | 덕윤 | 탐진최씨 |
20 | 택형(澤炯) / 수 통훈대부 | 숙부인 이천서씨 |
20 | 택현 / 수 숭록대부 | 정경부인 진주강씨 |
정경부인 김해김씨 | ||
20 | 택형(澤享) | 전주이씨 |
20 | 택원 | 영광정씨 |
20 | 택춘 | 이천서씨 |